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된 <홍도>가 조위한에 의해 소설화된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계기로 명·청간의 세력교체를 배경으로 하여 조선·일본·중국·만주간을 연결하는 최척과 옥영·몽선·몽석과 홍도의 이별·재회의 구성법이 고전소설(古典小說)의 참신한 맛을 더해주고 있다. 과거의 고전소설에서 도외시되었던 역사성과 지리적 감각이 이 <최척전>을 계기로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더욱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만하다. 강항(姜抗)의 <간양록>이나 노인(魯認)의 <금계일기>에서 볼 수 있는 포로가 된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피로문학(被盧文學)이라는 새 장르의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1 권 1책 한문 필사본 겉표지에는 <기우록>이라 쓰여 있고 작품 책머리에는 <최척전>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결미에 "천계원년신유이월 일소옹제(天啓元年辛酉二月 日素翁題 "라 쓰고 "소옹제위한호 우호현곡(素翁題緯韓號 又號玄谷)"이라는 필사자의 주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천계 원년은 1621년(광해군 13)에 해당하며 호를 소옹(素翁) 또는 현곡(玄谷)이라고 일컫는 조위한의 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창작 동기는 작자가 남원에 기거하고 있을 때 작품의 주인과 최척이 찾아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말하며 그 사실이 인멸되지 않도록 전말을 기록하여달라는 부탁을 기술한다고 하여 가탁법을 쓰고 있으나 그의 친구인 권필의 <주생전>역시 이런 가탁의 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창작이면서도 시의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런 기법을 구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의 전쟁이 조선인과 중국인의 삶에 어떤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웠는가를 탐구하고 있으며 작품의 무대도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으로 확장되어 있다. 또 조선인 몽선과 중국 여인의 홍도와의 결연은 다른 고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사건이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기처럼 여기던 시대상까지 고려한다면 작가의 진취적 사상을 엿볼 수 있고, 여주인공 옥영은 자신의 뜻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했으며, 강인한 의지와 슬기로 전쟁이 가져다 준 역경을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인으로 부각되어 있다. 후대 소설의 '춘풍의 아내'와 같은 강인하고 능동적인 여성상의 선구적 모습일 것이다.
또한 천상계의 신선이 죄를 짓고 지상으로 귀양온다는 이야기 요소인 적강모티브와 후대의 군담 및 영웅 소설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조위한(趙緯韓)
1567(명종 22)∼1649(인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 참판 방언(邦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옥(玉)이고, 아버지는 증판서 양정(揚庭)이며, 어머니는 한응성(韓應星)의 딸이다. 유한(維韓)의 아우이며 찬한(纘韓)의 형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김덕령(金德齡)을 따라 종군하였으며, 1601년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주부(主簿)·감찰 등을 지냈다. 1613년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의 무옥(誣獄)에 연좌되어 여러 조신들과 함께 구금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어 사성에 제수되었다가, 상의원정을 거쳐 장령·집의에 제수되고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 뒤 양양군수가 되었다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토벌에 참여, 서울을 지켰으며, 정묘·병자호란 때에도 출전, 난이 끝난 뒤에 군사를 거두고 돌아왔다.
그 뒤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며, 여러 차례 연석(筵席)에 나가서는 권신들의 실정을 계옥(啓沃)하였다. 그 뒤 동부승지·직제학을 지내고,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으며,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글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해학(諧謔)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