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인이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정조를 약값으로 치른다는 이야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덕관념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만 하는가? 생명의 존위를 위해서는 일반 상식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에서 병을 잘 고치는 최 주부는 어느 날 가난한 젊은 여인의 왕진을 부탁 받는다. 부자로 살고 있는 최 주부는 가기 싫어 요리 조리 둘러대다가 젊은 여인의 미모에 엉큼한 생각을 품고 왕진을 허락한다. 여인의 집으로 가는 긴 시간동안 유월을 더운 기운에 땀에 절은 여인에 반한 그는 여인을 유혹하여 범한다. 그러나 여인은 반항은커녕 순순히 상대하는 그녀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대로 얘기한다. 약값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력이 없는 환자를 도저히 그대로 그냥 둘 수 없어 그 집에서 치료를 위해 잡을 자게 되는 데 방 하나를 반으로 나눈 얇은 삽 자리 한 잎으로 가린 방에서 그 여인은 의원 옆에 와서 눕는 것이다. 그 남편도 그것을 손님에게 밥을 권하듯이 괜찮다고 권하는 것이다. 알몸으로 착 감기며 몸을 밀착시키며 달라붙는 여인. 그러면서 부채질까지 쉬지 않고 해 주는 여인을 보며 열흘동안 최 주부는 진땀을 빼면서 그 여인과 동침을 한다. 마지막날 최 주부는 그 환자의 아내가 없어진 것을 안다. 삽자리 한 장으로 속살거리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 기가 막힌다.
"꺼림직 하지 않으셔요? 남의 아주번네하고 잤는데도?"
"백 날을 자면 무슨 일이 있나? 내 병 땜에 임자에게 귀찮은 노릇이나 시켰을 뿐이지. 그게 애연한 그지."
"참 그래요, 나도 그 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
"당신 병만 낳으면 되지요."
"그럽 서로를 위해서 하는 일이 부끄러울 것이 뭐람."
"그래도 저 방에서 샌님을 모시고 자려니까 어쩐지 가슴이 뻐근하고 눈물이 나려고 그래서 슬펐어요. 이제 병이 낳았으니까 옛말이지." 끌어안고 또 끌어안고......
최주부는 너무 놀란다. 그들의 얼굴엔 광명과 행복이 영롱하게 번쩍이는 듯 했다.
"저런 것들은 정조도 모르고 질투도 모르는 모양이지."
최 주부는 눈이 부신 듯이 얼른 얼굴을 돌리며 혼자 중얼거린다.
현진건
호는 빙허(憑虛). 1900년 8월 9일(음력) 대구 출생.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 입학하여 1917년에 졸업하였다.
이에 앞서 1915년에 이상화‧백기만‧이상백 등과 함께 동인지 『거화(巨火)』를 발간했다 1918년 상해에 있는 둘째 형 정건(鼎健)을 찾아가 호강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동명』, 『시대일보』를 거쳐, 1936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1년간 투옥될 때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1943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1920년 『개벽』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여 혹평을 들었으나, 이듬해 자전적 소설 「빈처」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단편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타」(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과 장편 「적도」(1933~1934), 「무영탑」(1938~1939) 등을 꼽을 수 있다.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현진건 단편선』(1941) 등의 단편집과 『적도』(1939), 『무영탑』 등 장편소설을 출간했다.